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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PICK크닉

군산에서 시간을 여행하다

남겨진 것들을 찾아서

글. 구보은 사진. 군산시청, 편집실

인구 500여 명이 사는 한적한 어촌마을이었던 군산은 1899년 5월 개항되었다.
그로부터 1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천천히 넘기듯 군산은 흘러간 시절을 도시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잊히지 않는 아픔으로, 때로는 상기하고 싶은 추억으로 기억될 지난 역사를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곳.
전라북도 군산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호남관세박물관으로 운영중인 옛 군산세관의 모습

역사의 상흔을 쓰다듬다
근대문화유산거리

군산은 우리나라에서 근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다. 서쪽으로는 바다와 맞닿아 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가 이어지는 까닭에 이곳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보내기엔 더할나위 없는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개항 후 군산에는 항만과 철도, 도로가 건설되고 근대 건물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먼저 군산의 근대를 들여다보기 위해 근대문화유산거리가 조성된 해망로 일대에 가본다. 한때는 저물어가는 과거였으나 지난 2011년 근대역사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거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옛 군산세관이다. 지어진 지 110년이 넘은 건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순종 때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 등을 들여와 건축한 것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3대 서양 고전주의 건축물로 그 의미가 깊다. 이색적이고 고풍스러운 모습에 반해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예상과는 달리 내부도 볼 수 있는데 세관 역사, 체험, 사료, 기록 등이 보관된 호남관세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금만 발길을 옮겨 신흥동으로 가본다. 군산의 원도심으로 당시 일본인들이 남긴 자취가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신흥동 일본식 가옥(옛 히로쓰 가옥)이다. 포목점을 운영했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이 집은 ‘ㄱ’자 모양으로 나란히 선 건물 2채 사이로 정교한 정원을 품고 있다. 석등과 분재, 연못 등 마치 자연을 축소해 놓은 듯한 일본식 정원의 모습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특별한 이벤트나 볼거리가 있는 공간은 아니지만, 이곳만이 주는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어 머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정원을 거닐고 있노라니 공간이 주는 미적 감흥 너머에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슬픔이, 그리고 지금까지 가꾸고 보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다.

근대역사박물관ㅣ전북 군산시 해망로 240 옛 군산세관(호남관세박물관)ㅣ전북 군산시 해망로 244-7 신흥동 일본식 가옥ㅣ전북 군산시 구영1길 17

군산의 근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근대역사박물관

일본식 정원의 독특한 정취를 볼 수 있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옛 히로쓰 가옥)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것들을 추억하다
경암동 철길마을

군산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저마다 자신의 잘남을 뽐내는 것 같은 높다랗고 번쩍이는 빌딩 아래에 살다, 내 키만 한 낮은 담벼락과 세월의 때가 묻은 건물이 주는 편안함이란….
내 머릿속 어느 한 장면을 꺼내어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친숙함도 든다. 그래서인지 군산은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8월의 크리스마스>다. 1998년 개봉한 이 영화는 시한부 삶을 사는 사진사 정원(한석규 분)과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 분)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촬영은 대부분 신흥동과 월명동 일대에서 이뤄졌는데, 신흥동 주택가에 주인공 정원이 운영하던 초원사진관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관 옆으로는 다림이 타고 다니던 주차단속 차량을 전시해 두었다.

초원사진관이 배경으로 나온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초원사진관

초원사진관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다. 다림이 앉아 증명사진을 찍던 의자가 그대로 남아있어 주인공이 된 듯 추억을 남기기에 더없이 좋다. 모두가 같은 마음인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차례차례 줄을 서서 인증 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오래된 시계와 선풍기, 낡은 소파까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벽면에 걸린 영화 속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영화를 보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낡은 선로와 함께 과거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경암동 철길마을

다음으로 향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이다. 2014년 개봉한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황정민 분, 한혜진 분)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철길을 걸었던 장소다. 원래 이곳은 신문용지 제조업체였던 페이퍼코리아의 생산품과 원료를 군산역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주인 없는 이 땅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기찻길을 따라 판잣집이 다닥다닥 이어졌다.

경암동 철길마을이 배경으로 나온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선로 옆에 늘어선 특색있는 가게들

한때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을 집들이 이제는 특색 있는 가게들로 새롭게 태어났다. 낡은 선로와 자박자박 자갈이 과거를 소환하기 때문일까. 추억과 재미를 테마로 한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옛날 문방구 앞 불량식품을 연상시키는 먹거리가 가득하고, 곳곳에 걸려있는 옛 교복들이 마치 우리에게 그 시절을 느껴보라고 유혹하는 것만 같다. 추억 여행 앞에서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아마 그때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젊은이부터, 그 시절을 지나왔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초원사진관ㅣ전북 군산시 팔마로 211 경암동 철길마을ㅣ전북 군산시 경촌4길 14


군산을 한 뼘 더 가까이

군산은 바다와 강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져 있어 예로부터 ‘물의 고향’이라 불리었다. 그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은파호수공원

햇살과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물결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 모습을 따 이름 지었다. 아름답고 넉넉한 은파호수공원은 군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처다. 호수를 빙 둘러 산책하면 1시간 반 남짓 걸린다. 수변산책로를 비롯해 음악분수, 수변무대, 연꽃자생지, 물빛다리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전북 군산시 은파순환길 7

선유도

크고 작은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섬이다. 일몰이 아름다운 선유낙조,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고운 백사장의 명사 십리해수욕장 등 명소가 많다. 유람선을 타고 고군산군도의 비경을 돌아보거나, 짚라인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가며 일대 경관을 감상할 수도 있다.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섬유남길 3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