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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 체질개선, 다부처 협업에 기반한 공간전략이 필요

글. 조성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일러스트. 김수진

국가적인 제조업의 위기가 논의될 때마다 산업단지가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만큼 모두가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나, 쉽게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운 공간이 산업단지다. 1962년 울산공업지구가 지정된 이래 국가산업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변화해왔지만 그 기반을 담당한 산업단지의 개발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저렴한 부지공급을 위한 교외화된 입지, 생산기능 위주로 구획된 단조로운 토지이용, 획일화된 패널형태 공장건축은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 산업단지의 경관을 특징 짓는 요소다.

물론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1년 공업단지라는 간판을 내리고 산업단지로 개칭한 이래, 서비스업 입주비중은 소수 단지에 편중된 형태로나마 꾸준히 증가해왔다. 2001년 도입된 도시첨단산업단지 제도는 초기 지정사례들이 개발제한구역 같은 교외지역에 집중되면서 일반산업단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판교 제2테크노밸리처럼 제도 취지에 어울릴만한 사례를 분명 만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민간이 주도하는 기업 입주공간의 변화상이나 해외 혁신공간의 모습과 견주어 본다면 국내 산업단지의 변화가 더디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부처별 칸막이식 접근의 한계

산업단지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문제는 입주기업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유사한 제품을 싸게 만드는 것으로 경쟁하기 어렵게 된 현 시점에서 생산기능의 효율적 배치에 특화되어 있는 전통 산업단지들은 낡은 틀이 된 지 오래다. 최근 5년(’15~’20) 국가산업단지의 연간 생산액은 17.3%, 수출액은 28.7% 하락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내수시장과 수출 위축이 겹친 결과이지만, 그 이전 시점과 비교하더라도 산업단지의 실적은 크게 다르지 않은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부터 경쟁력을 길어내야 하는 지식경제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단지는 고립된 생산기지의 틀을 벗고 집합적인 혁신역량의 배양소로 진화해야 한다. 분양 위주의 대규모 필지로 구획된 경직된 공간이 아니라, 창업자와 신진기업이 활발하게 진입해 기존 질서와 경쟁하며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입주기업들의 다양한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종합적인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각종 지원사업과 예산이 부처마다 흩어져 있다는 점은 산업단지를 위한 종합적인 전략 수립을 어렵게 한다. 일례로, 창원국가산업단지는 수소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수소차 기술개발은 산업부 소관인 반면 수소충전소는 환경부의 영역이고 수소버스 보급은 국토부가 담당하는 식으로 담당부처가 갈라져 있다. 각 부처의 사업을 골고루 유치해 연계하지 못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처별로 분절되어 있는 지원체계는 국가적인 혁신거점의 지형 역시 분절시킨다. 중기부의 그린 스타트업 타운, 산업부의 산학융합지구, 국토부의 캠퍼스 혁신파크와 도심융합특구, 과기부의 강소연구개발특구 등이 최근 추진되고 있는 혁신공간 사례다. 소관부처가 가진 자원·권한에 따라 입지조건 및 지원수단의 차이가 존재하겠으나 큰 틀에서의 지향점은 달라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각 공간이 가진 장점을 엮어낼 공간전략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의 거점에서 연결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사업들이 분산되기도 하고, 유사한 성격의 공간이 같은 권역 내에서 경합하며 지역성장의 구심력을 흩어놓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산업단지대개조계획의 차별성과 추진방향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서 최근 새로운 형태의 다부처 협력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지역 혁신거점으로 전환하기 위해 정부가 2019년부터 추진하는 '산업단지대개조계획'이 그것이다. 사업의 골자는 다양한 부처의 지원사업들을 지자체가 선별하고 연계해 ‘지역일자리 거점 혁신계획’을 작성하면, 중앙정부가 지자체와 협약을 체결한 뒤 종합적인 패키지 지원을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모델이 실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우선은 부처별 예산과 사업의 칸막이 구조를 중재해낼 정부의 총괄기능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 범정부조직의 중개자적 역할이 요구되는 지점이지만, 자체적인 회계나 집행권한을 갖지 못한 위원회가 다부처사업을 조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이를 위해서는 부처 간 협업예산 및 연계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지역이 주도적으로 예산을 운용할 수 있는 포괄보조 형태의 지원방식을 검토해야 한다.

또 다른 과제는 지역 운영주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중앙에서 다부처 예산을 내려보내더라도 이를 지역 맥락에서 소화해 기업들의 필요에 맞게 전달해낼 중간조직이 없다면 효과적인 운영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다. 원주 의료기기 산업은 지역대학과 의료기기테크노밸리의 헌신적인 노력이 성숙한 결과이고, 전주의 탄소산업 역시 캠틱종합기술원 같은 혁신기관의 전방위적 지원이 10여년 간 축적된 바탕 위에 성장한 사례다. 이처럼 지역주도 혁신성장이 작동하고 있는 소수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지역산업의 성장과정에 맞춰 다양한 부처지원사업을 유치하고 연계하는 방식으로 자생적인 생태계를 키워나간 지역 혁신기관의 역할이 반드시 관찰된다. 산업단지대개조계획의 지속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지역 운영주체의 역할과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혁신기관 간의 협업구조를 내실화하는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외부필자의 원고는 공단의 공식적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