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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ON

자율성의 시대, 스스로 일상을 설계하다

‘바른생활 루틴이’의 탄생

글. 구보은 / 참고 트렌드 코리아 2022(김난도 저, 미래의창)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기, 하루 1만 보 이상 걷기, 자기 전에 책 10장 읽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처럼 루틴을 만들어 자기만의 작은 성취를 쌓아간다.
외부적 통제가 사라져가는 사회에서 루틴을 통해 스스로의 일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우리는 ‘바른생활 루틴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습관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2022년을 이끌 10대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바른생활 루틴이’를 선정했다. 여기서 ‘루틴(routine)’이란 매일 수행하는 습관이나 절차를 의미하는데, 삶의 방향성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습관과는 차이가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욜로(YOLO)’를 외치던 MZ세대가 루틴이를 자처한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자율성이 높아졌다. 비대면 수업과 재택근무 등으로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고 하교하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등의 규칙적인 패턴이 불필요해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설계하고 그 안에서 성과를 보이면 된다. 이는 비단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근로 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확대 등 개인의 자유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높아진 자율성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야기한다. 스스로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이들은 구조화된 일상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큰 성공이 어려워진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일상에 몰입함으로써 그 안에서 미세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도 바른생활 루틴이를 만든 하나의 원인이다. 성공과 행복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달라진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가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의미를 가지며, 인생의 성공 역시 누군가가 제시하는 획일화된 모습이 더는 아니게 되었다. 루틴이에게 중요한 가치는 평범한 인생이지만 그 인생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삶의 태도다.

바른생활 루틴이로 살아가는 법

그러나 루틴을 실천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할 수 있을까. 바른생활 루틴이들이 사용하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방법은 스스로 루틴을 실천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처하도록 강제하는 자기 구속 전략, 이른바 ‘자기 묶기’다.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는 바로 ‘돈’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바디프로필’ 열풍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디 프로필을 촬영하겠다고 목표를 정하는 것 자체가 운동 루틴을 꾸준히 실천하는 동기가 된다. 실제로 바디프로필을 촬영하려면 많은 돈이 드는데, 이렇게 큰돈을 헛되이 쓰지 않으려면 매일 운동 루틴을 실천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방법은 옆에서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 즉 조력자를 찾는 것이다. 루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타인의 힘을 빌려 강제하는 전략이다. 익명의 타인들과 서로의 성취를 자극하도록 지원하는 앱이 최근 인기다. ‘열품타’ 앱은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혼공족을 타깃으로 한 가상 독서실로, 특정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그룹방을 만들 수 있다. 그룹마다 규칙을 정하거나 실시간 랭킹을 통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마지막 전략은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는 되돌아보기다. 루틴의 결과를 성공과 실패만으로 재단하지 않는 전략이다. 가령, 운동 루틴을 수행한다면 ‘체지방률 ○○% 이하 달성’ 등과 같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운동하는 순간을 즐기는 것일 테다. 다이어리를 쓰거나 순간순간의 감정을 기록하는 앱을 사용하는 등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이다.

루틴, 트렌드를 넘어 문화가 되려면

바른생활 루틴이는 그동안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라이프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기업은 소비자들의 성실한 하루를 지원하는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예컨대 농심은 지난 2021년 ‘바른 물습관 캠페인’을 기획했다. 물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 맞춰 푸시 알람을 보내고 이를 받은 소비자들이 물 마시는 인증 사진을 업로드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인사·조직 관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세계적인 OTT 기업 넷플릭스는 휴가, 출장비, 경비 사용 규정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율 문화를 도입해 회사가 직원들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직원 스스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최근 국내 기업들도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등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기업 문화를 개선하고 있다. 직원들은 운동하거나 스터디를 하는 등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이처럼 자기 주도적인 조직 문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더 좋은 성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인간은 본성이 게으르기 때문에 통제하지 않으면 일을 멀리하고 책임을 회피한다는 ‘X이론’이 대부분의 조직 내 임금체계와 복지 제도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바른생활 루틴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늘어난 자유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루틴을 만들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관리해 나가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향상을 도모하는 존재라는 것을 믿는다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