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은 좋아하는 것을 깊게 파고든다는 의미에서 취미나 취향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최근 단순히 취미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에 진심’인 사람이 늘고 있다.
취미 생활에 대한 트렌드를 넘어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디깅모멘텀에 대해 알아본다.
‘디깅(Digging)’이라는 단어는 본래 음악 분야에서 쓰였다. “디깅 어디서해?”처럼 자신의 음악 라이브러리를 채우기 위해서 ‘디깅한다’는 표현을 쓰곤 했다. 이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돈, 열정을 투자하며 파고든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이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트렌드를 가리켜 ‘디깅모멘텀(Digging Momentum)’이라고 명명했다.
사실 좋아하는 분야에 과도할 정도로 몰입해 애정을 쏟는 행동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의 몰입에는 조금 특별한 데가 있다.
디깅모멘텀에서 움직임을 뜻하는 ‘모멘텀(Momentum)’은 원래 물리학 용어로, 정치·경제 분야에서 특정한 사건이나 흐름이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계기 혹은 전환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디깅이 단지 깊은 취미 생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효능감, 나아가 행복을 찾는 계기나 전환점이 된다는 의미다. 더욱이 이들은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기업이 만드는 문화나 생태계에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전략의 방향을 주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디깅은 몰입 대상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몰입하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콘셉트에 열중하는 콘셉트형 디깅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함축적 이미지를 잡아내 콘셉트로 삼거나 콘셉트가 확실한 콘텐츠에 더 쉽게 빠져든다. 요즘 웹드라마와 웹코미디를 평정하고 있는 콘셉트는 극사실서사,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이다. 대표적으로 유튜브 채널 픽고(PICKGO)는 사회생활 안 해본 애들 특징, 진지한 사람 특징 등 일상적인 소재를 콘셉트로 잡아 매우 리얼하게 묘사하는데, 평균 조회수가 100만이 훌쩍 넘는다.
다음으로, 물건이나 경험의 수집을 통해 만족과 과시를 추구하는 수집형 디깅이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수집 대상은 캐릭터로, 지난해 재출시된 ‘포켓몬빵’ 띠부띠부씰 열풍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따라 편의점 업계는 캐릭터 스티커가 동봉된 먹거리를 잇달아 선보이며 포켓몬빵 열풍에 합류하기도 했다. 수집 욕구는 물건뿐만 아니라 경험으로도 이어진다. 수집하는 것에서 나아가 관련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경험을 쌓으며 더욱더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수집형 디깅은 단지 수집에서 멈추지 않고 적극적인 자랑이 뒤따르기 때문에 마케팅적으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몰입의 정도를 높이는 관계형 디깅이 있다.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대상은 가수·아이돌·배우·캐릭터 등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덕후’라고 스스로 밝히는 것을 ‘덕밍아웃’이라고 부르는데, 디깅하는 관심사를 공개함으로써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몰입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다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처럼 디깅이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몰입이 갖는 힘에 주목해야 한다. ‘몰입(flow)’의 개념을 정립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몰입이란 어떤 활동이나 상황에 완전히 빠져들어 집중하고 있는 상태로, 사람들은 몰입을 경험할 때 행복을 느낀다. 하루 중 잠깐이라도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여 행복을 충전한다면, 일상의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심리적 근성이 생긴다.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해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였던 것도 디깅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주변 상황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온전히 바꿀 수 있는 그무엇을 찾고 몰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의미다.
디깅은 이제 더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람들은 디깅을 단순한 취미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과 효능감, 행복을 찾는 계기로 여기며 시간과 돈, 그리고 열정을 과감하게 투자한다. 이로써 엔터테인먼트·콘텐츠·취미·키덜트 등 관련 산업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이제 기업과 브랜드들은 그저 합리적인 소비만을 추구하기보다, 디깅러들의 취향과 니즈를 분석하고 이에 맞춰 전략적이고 적극적으로 보다 다채로운 디깅 경험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TV·라디오·신문·잡지로 표현되던 4대 미디어의 시대가 가고 셀 수 없이 많은 미디어가 공존하는 시대가 왔다. 디깅러의 몰입을 높이고 싶다면 이 다양한 미디어들을 그 특성에 맞게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디깅이 주는 과도한 몰입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긍정적 중독은 정서적 충족감을 주지만 부정적 중독은 일시적 쾌감만을 주기 때문에, 과도한 몰입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정한 기준에 대해선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행복 추구와 자기 성장이라는 큰 지향점 아래에서 일상과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디깅’은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