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 번이면 뭐든지 문 앞으로 배송되는 세상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밤을 새워가며 줄을 서고 광클을 해도 원하는 물건을 얻지 못한다.
오죽하면 희소한 물건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가리키는 용어까지 등장했겠는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득템력’에 대해 알아본다.
최근 마트나 편의점 앞에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6년만에 재출시된 포켓몬 빵을 구하려는 것이다. 그나마 기다려서 살 수만 있다면 다행인 편이다. 온라인 중고거래 시장에서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포켓몬 빵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처럼 요즘 소비자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양한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경제적 지불 능력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희소한 물건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일컬어 ‘득템력’이라고 정의했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남들과 차별화하려는 시도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쉽게 익힐 수 없는 문화적 소양이나 세련된 에티켓으로 자신의 지위를 은근히 과시했고, 현대사회에서는 값비싼 사치품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나 사치의 대중화로 단순히 돈을 쓰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돈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누가 득템하느냐가 차별화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오늘날의 득템력은 소비가 금전적인 지불 능력에서 더 나아가, 희소한 물건이나 경험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능력이란 득템했을 때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아이템을 알아보는 안목, 해당 제품을 득템하기 위해 쏟는 정성, 득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정보력 등을 포함한다.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소비자들은 어떻게 득템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먼저, 첫 번째 전략은 기다리는 것이다. 명품을 득템하려는 오픈런이 대표적인데, 매장 개점 시간을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행위를 뜻한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의 수량은 제한적이다 보니 득템을 위해선 기다림이 필수다. 줄서기 경쟁이 치열해지자 최근에는 줄서기 대행서비스 업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두 번째 전략은 운이다. 선착순 판매 방식에 대한 공정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무작위 추첨을 통해 상품의 구매 권한을 부여하는 래플(raffle)이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브랜드가 나이키다. 온라인 추첨을 통해 유명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제품이나 인기 모델을 살 수 있도록 자격을 주는데, 매번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다.
세 번째 전략은 득템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스타벅스 굿즈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행사 기간 동안 음료를 구매할 때마다 적립되는 온라인 쿠폰을 일정 수량 이상 모아야만 한다. 이처럼 브랜드에서 원하는 구매 금액을 채우거나, 브랜드가 요청하는 드레스코드를 맞추는 등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득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소비자는 다양한 필살기를 갈고 닦고 있다.
득템력으로 인해 새로운 소비 시장이 탄생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득템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누군가에게는 기회이지만, 우려할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득템력은 기업들에게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 실제로 많은 브랜드들이 한정판 콜라보 제품이나 굿즈 등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득템 열풍을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가진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브랜드는 화제성을 만드는 기획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과거에는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능력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같은 물건이라도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기획력과 트렌드가 될만한 콘텐츠를 선별하고 선점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또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득템이 하나의 투자 수단으로 거듭났다. 인기 있는 상품을 구매한 뒤 비싸게 되파는 리셀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리셀테크(리셀+재테크)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득템 시장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은데,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되팔렘이다. 되팔렘이란 물건을 사들여 비싼 값에 되파는 업자를 이르는 말로, 아르바이트 인력을 대거 고용하거나 심지어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많은 물건을 독점해 문제가 된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있다. 어느샌가 SNS에는 각종 득템 경쟁에서 승리한 성공기들로 빼곡하다. 소비자들이 득템의 과정을 즐기고 이를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량이 제한적인 고가의 제품이나 아무나 갖기 어렵다는 굿즈를 득템한 사진들이, 누군가에게는 무력감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득템 경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품 과잉의 시대, 타인과 차별화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과 정교한 마케팅이 교차하면서 득템력은 이제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다.